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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위 계승과 왕의 역활에 대해서 알아보자

요즘이야기

by 잡다한 지식 사전 2024. 5. 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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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는 누구에게 어떻게 계승되었을까?

  • 왕위는 원래 왕의 큰아들, 즉 장자가 계승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의 왕 중에 장자가 왕위를 어이 받은 경우는 얼마나 될까?

조선의 왕은 모두 27명인데, 그중에서 장자였던 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7명뿐이었다. 맏아들이 제대로 왕이 된 경우는 단지 6명뿐이고, 순종을 포함해 다른 왕들은 모두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나머지 21명의 왕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왕이 되었을까? 그 과정과 상황을 9가지로 나눠 살펴보도록 하자.

①반정 또는 반란에 의한 즉위

  • 반란을 통해 즉위한 왕은 태종과 세조 2명이고, 반정을 통해 즉위한 왕은 중종과 인조 2명이다. 반란은 왕이 되고픈 욕심으로 군대를 일으킨 것이고, 반정은 와의 잘못된 통치로 혼란스러워진 나라를 바로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②반란 주동자가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맡기는 경우

  •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종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반발을 무마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시적으로 정종에게 왕위를 맡겼던 일이 있었다.

③맏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차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

  • 예종과 효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종은 세조의 적장자 의경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자에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고, 효종 또한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올 왕위에 오른 바 있다.

④세자를 쫒고 적자를 세운 경우

  • 세종이 그러했다. 태종의 적장자는 양녕대군이었으나 행실과 자질에 문제가 있어 폐위되고, 이후 적자 중 셋째였던 충녕(세종)이 세자가 되어 왕위를 계승했다.

⑤전왕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왕위를 받은 경우

  • 정동, 태종, 세종, 세조, 예종이 이에 속한다.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 전왕이 살아 있을 때 공식적으로 즉위했다. 제1차 왕자의 난으로 힘을 잃은 태조가 눈물을 머금고 정종에게 왕위를 내줬고, 정종은 태종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진하여 물러났으며, 태종은 세종의 제왕 수업을 위해 계획적으로 왕위를 넘겼다. 세조는 어린 단종을 압박하여 왕위를 빼앗다시피 했고, 예종은 세조가 죽기 하루 전에 왕위를 넘겨받았다. 세조를 제외하고 이렇게 살아 있을 때 왕위를 넘겨준 와은 상왕 또는 태상왕으로 불렸다.

⑥적자의 부제로 서자가 왕위계승사례

  • 서자는 후궁의 아들을 말하는데 광해군과 순조가 이런 경우였다.

⑦아들이 전무해 왕족에서 양자를 들인경우

  • 양자를 1명 들이거나 그의 동생에게 왕위를 잇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 속하는 왕이 선조와 영조, 철종, 고종이었다.

⑧세자가 단명이 된 경우

  • 세자가 일찍 죽는 바람에 세손이 왕위를 잇는 경우인데, 정조와 헌종이 그렇게 왕이 되었다.

⑨타인에 의해 밀려나 세자가 오른 경우

  •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이에 해당한다. 일본이 강제로 고종을 퇴위시킨 뒤 순종을 왕의 자리에 올렸다.

조선의 왕이었던 세종대왕

왕위에 오른 뒤에도 나이가 어린 탓에 섭정을 받는 경우도 여럿 있었는데 예종, 성종, 명종, 선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중 예종과 철종은 즉위 당시 19세나 되어 직접 친정이 가능한 나이였지만, 능력이 모자라 섭정을 받았다. 반대로 곧바로 친정을 한 나이 어린 왕도 있다. 단종과 숙종이 대표적이다. 숙종은 14세의 나이에 즉위했지만 명민하고 학문이 뛰어나 바로 친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종은 즉위 당시 수렴청정해 줄 대비나 대왕대비가 없는 상황이라, 12살의 나이로 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개 섭정기에는 외척이나 권력 있는 신하의 횡포로 조정이 혼란스럽기 마련인데, 단종처럼 섭정해 줄 사람조차 없을 때는 더 심각한 상황에 빠져든다. 결국 단종은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으며, 단종을 지지하던 김종서 같은 신하들도 모두 살해되고 말았다.

과연 왕은 어떤 일들을 했을까

왕조시대에는 근본적으로 왕이 입법, 사법, 행정에 관한 권한을 가지므로 왕은 국가의 모든 일에 대해 결정권을 지닌다. 그렇기에 왕의 권한은 엄청났고 업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왕의 업무를 만기(萬機)라고 일컫기도 했다.

왕의 하루

  • 해뜨기 전에 일어나 대비나 왕대비 등 어른에게 문안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해 뜰 무렵 경연에 나간다.(경연은 왕이 학문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하는 경우 조강이라고 했다. 이때 왕은 신하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논쟁이나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 조강이 끝나면 아침을 먹고 조화를 하는데, 공식 업무의 시작이다. 조화에는 상참과 조참이 있다.
  • 상참은 간단하게 줄인  약식 조회로 매일 짧게 진행되었다. 조참은 정기 조회로 한 달에 4번 열 리며 날짜는 5일, 11일, 21일, 25일이었다. 조회에는 의정부의 재상, 대신, 육조, 삼사의 당상관, 승지, 경연관, 사관 등의 신하가 참석한다.
  • 이후에는 조계라고 하는 업무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윤대를 했다. 윤대는 각 행정 부서의 순번에 따라 파견된 관리를 만나는 일로, 문신은 6품 이상, 무신은 4품 이상만 가능했다. 왕의 업무가 과중하지 한도록 윤대는 하루에 다섯 부서 이하로 제한되었다.
  • 윤대 후 에는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경연에 나갔다. 낮에 하는 경연을 주강이라 했는데, 강의는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이때 지방관료들을 만나 지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받았다.
  • 이후 야간의 궁궐 수비나 숙직에 관한 업무를 보았다. 명단을 확인하고 야간 암호를 결정하는 일을 했다. 오후 5시경에 모든 공식업무는 마무리되었다. 이때부터 저녁 강의인 석강에 참석하여 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저녁을 먹은 후 휴식을 취하고, 취침 전에 다시 대비와 왕대비에게 문안을 드렸다.

 

번외로 매년 열리는 정기적인 예식도 중요한 업무였다. 정월 초하루에 열리는 망궐례가 있고, 종묘에서 선대왕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종친과 신하의 인사를 받았다. 또 철마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종묘에 제사를 올리고, 정기적으로 공자, 단군, 기자, 고려의 시조 왕건에게 제사를 지내야 했다. 왕의 한 해는 그야말로 제사로 시작해서 제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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